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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난십경湘南十景」 시리즈

⇒ 여름의 쇼난을 그리는 단편집

 

아오미 편 --

 

 

 

고요한 단상 위로 부드러운 빛이 겹겹이 쏟아진다.

30인의 학생은 앞을 주시하며

지금, 한 가지 커다란 일을 행하려 한다.

 

지휘자가 양손으로 나아갈 길을 가리킨다.

반주자의 손가락이 건반을 내달린다.

 

그 순간——

 

 

 

잠에서 깼다.

아래층에서 전화가 울리고 있다.

나는 딱 한 번 눈을 깜빡인 뒤,

쏜살같이 이불에서 뛰쳐나와 수화기를 붙들었다.

매미가 한 마리 우는 아침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오미입니다」

「안, 안녕하세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혀를 깨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깨우고 말았군요」

「아뇨, 일어나서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리 말하며 뻗친 머리를 손바닥으로 매만진다.

「지금 어디십니까?」

「숙소입니다. 이제 막 학생들 배웅을 마친 참입니다」

「인솔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럼 곧 근처로 마중을——」

「죄송합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일정 말인데…… 다른 날로 해도 되겠습니까? 급한 일이 생겨 버려서요」

「물론입니다, 그쪽을 우선하세요」

「미안합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든 채, 유리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은 벌써 여름이구나, 하고 거의 남 일처럼 생각했다.

아마 나는 이제부터, 바로 이 여름 속에서 혼자가 될 텐데도.

 

누구에게나 급한 용무, 급한 변고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를 대비해서 하루를 보낼 방법쯤은 미리 준비해 뒀어야 하는데.

재깍 떠올리지 못하는 나는, 역시 역량 부족이다.

 

그러던 중 매미가 두 마리째 울기 시작했다.

「……오늘 좀 한가해?」

시즈마 씨라는 실없는 남자가 히죽대는 눈빛으로 찾아왔다.

「아침 댓바람부터 우울한 표정이네. 방금 전화, 안 좋은 소식이었지?」

「당신과는 관계없습니다. 그보다, 또 멋대로 집에 들어오다니요」

「이 집 복도, 시원해서 자기 좋단 말이야. 겨울엔 안 올 테니 안심해」

여름 같은 남자다, 라고도 생각했다.

매미, 소나기, 일몰——

여름은 갑작스러운 것들로 넘쳐난다.

벚꽃이 천천히 피고 지는 봄이나,

서서히 추워지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이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기질을 지녔다.

여름은 늘, 우리가 준비되길 기다려주지 않고 찾아온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수화기를 놓는다.

이 남자 대신 복도의 이불을 정리하기로 했다.

「한가하면 말야~, 나랑 어디 드라이브 안 갈래?」

「안 갑니다」

「그럼 네 하루에 어울려 주지」

「민폐입니다」

「점심은 뭐 먹고 싶어? 고기? 구운 고기? 스테이크?」

「전부 당신이 먹고 싶은 거잖아요」

「그래서, 너는?」

「아무것도 안 먹고 잘 생각입니다」

「하아. 모르는 건가. 네가 외롭지 않도록 형이 놀아주고 있는 거야」

「……」

「차여버린 불쌍한 너에게 특별 보너스. 오늘 하루, 네가 뭘 원하든 전부 다 들어주지」

「감사합니다. 그럼 돌아가 주세요」

「응응응. 또 와줄 테니까」

시즈마 씨는 슬픈 음색의 휘파람을 불며, 경박한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확실하게 멀어진다.

순순한 그 태도가 뜻밖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내 모습이 「비참」해 보이나 보다.

 

 

 

——8월 초. 세상은 여름 휴가철.

아오미 선생님과 학생들은 합창 콩쿠르 예선 대회를 위해

오시마섬에서 도쿄로 들어와 있었다.

오늘 아침의 꿈은 그들을 걱정하는 내 마음이 무의식중에 만들어내 버린 광경이리라.

대회 종료 다음날인 오늘, 아오미 씨는 비는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 줄 예정이었다.

그러나——

 

 

급한 일.

그 세 글자 뒤에 있는 사정을, 나는 미처 묻지 못했다.

숙소에 다시 전화를 해 봐야 할까.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수화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전화가 다시 삐리리, 하고 울렸다.

 

「——아오미입니다. 오오사키 씨 맞으시죠?

「예」

「아까는 죄송합니다. 분명 설명이 부족했을 겁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급한 일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그 일 말입니다만. 당신도 와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럼 에노섬(江ノ島)으로」

「예……예?

「에노섬입니다.

 오오에(大江)강의 「에江」, 가타카나의 「노ノ」, 그리고 「섬島」입니다」

「압, 압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에노섬으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거기서——당신의 힘을 빌려주세요」

 

전화는 끊겼다.

텅 빈 수화기 너머에서, 아오미 씨가 벌써 걸어 나가는 기척을 느낀다.

나도 서둘러 채비를 시작했다.

 

 

 

 

 

——에노섬이란, 사가미만(相模湾)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이다.

변재천을 모신 신사가 있으며,

근방에서는 가마쿠라에 버금가는 행락지로 알려져 있다.

해류로 인해 여러 차례 잔교가 떠내려가,

현재는 콘크리트 다리가 가설되어 사람들의 왕래를 책임지고 있다——

 

에노섬에 급한 일이 있다니,

그런 사안에 놀라면서도 섬으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망설임이나 당혹감은 없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도 행락객들처럼 똑같이 시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역에 도착한 건 내 쪽이 먼저였다.

이윽고 도쿄에서 온 전철이 도착하여,

시원한 느낌의 남성이 내렸다.

우리는 바로 서로를 발견했다.

 

검은 정장. 깃 높은 흰 셔츠.

그리고 손에는, 프릴 달린 여성용 파라솔——

 

「멀리까지 수고를 끼쳤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오오사키 씨」

아오미 씨가 파라솔을 펼쳤다.

바닷바람에 프릴이 복잡하게 나부낀다.

그는 내게 그늘을 절반 기울여 주었다.

「다시 한번. 아까는 죄송합니다. 곤란한 전화를 드려서」

「아뇨……」

「그럼 가시죠. 에노섬으로」

「예, 예에」

그는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행동을 서두르고 있었다——

 

 

 

육지와 섬을 하나로 잇는 벤텐(弁天)다리.

햇빛을 가릴 것은 아무것도 없고,

희미하게 생겨난 신기루가 그 너머의 섬을 실제보다 더욱 멀리 보이게 한다.

섬 뒤편에는 입도운이 피어올라 있다.

그 열띤 시선으로부터 숨듯이, 우리는 파라솔 속에 몸을 웅크렸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죄송합니다. 모처럼 휴가 일정을 맞춰 주셨는데」

「제 업무는 조정이 유연한 편이니까요」

「미안합니다」

「그보다, 지구 예선 결과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탈락했습니다」

「의외네요」

 

올해 4월에 막 창설된 부라곤 해도,

학생들은 열정적이라고 들었다.

무엇보다 아오미 씨의 지도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우리 부는 우승 조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부원 7. 반주자 0.

 피아노를 칠 수 있는 학생이 없는 터라 제가 맡았습니다」

커다란 무대에 서는 작은 합창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오늘 아침 꿈속에서 본 단상은, 어쩌면,

그들이 아닌 다른 학교의 영광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점은——

「부원들은 어떤가요?

「다음 콩쿨을 향해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분하다는 듯이. 하지만 즐겁다는 듯이. 섬으로 돌아갔습니다」

역시 자발적인 의지로 창설한 부답다.

이 정도로는 마음이 꺾이지 않는구나.

 

 

다리 위를 그저 걷는다.

엇갈리는 사람 모두에게서 땀방울이 반짝인다.

나는 차츰, 다른 식은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아오미 씨는 「교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정장을 입고. 등을 곧게 펴고.

반면 나는 한껏 들뜬 차림새다.

오픈칼라 셔츠를 입고. 앞머리는 위로 넘기고.

……지금 당장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오미 씨는 이쪽을 거의 돌아보지 않았고,

그저 섬만을 응시했다.

 

「——학생이 가출했습니다. 오늘 아침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섬으로 건너가자, 청동으로 된 도리이(鳥居)가 세워져 있었다.

가파른 비탈길엔 기념품 가게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나카미세도리(仲見世通り)라 불리는 이 상점가에는 이미 관광객이 가득했다.

 

「합창부 부원입니까?

「아니요. 일반 학생입니다」

「저도 주변을 살피겠습니다. 학생의 특징은요?

「지금은 교복을 입지 않았을 테고.

 머리는 어떻게 흐트러뜨렸을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한눈에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학생을 모르는 당신이라도」

묘한 말투였다.

 

 

상점가 끝에는 제2의 도리이와 돌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노시마 신사는 이 산 안쪽에 있다.

「신사가 아니라 섬 뒤편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에노섬은 산 두 개가 겹쳐진 듯한 형태이며,

발 닿는 곳의 기복이 심하다.

그러나 오른편에는 산의 외곽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우회로가 있다.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이 쓰는 지름길이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주변에는 나뭇잎이 드리운 그림자가 가득 깔려 있어

아오미 씨는 파라솔을 접었다.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교 생활에 무슨 불만이라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음악 수업에는 빠짐없이 출석했으니, 학우와 원만히 지내는 모습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정 문제일까요」

「부유한 가정입니다. 아무런 불편함도 없습니다」

 

완만한 비탈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매미 소리가 보다 짙어졌다.

땀을 훔치고 싶었으나, 아오미 씨는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그 옆얼굴은 변함없이 엄격한 「교사」의 그것이었다.

 

「옛날. 겨울밤에.

 저도 가출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도 행복해서.

 여기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맨발에 밟히던 눈의 차가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좀 더 유치해서,

 호기심으로 멀리 떨어진 논까지 갔었습니다」

손끝에 닿은 벼 이삭은 까끌까끌했다.

하나도 기분 좋지 않았다.

그것이 눈앞 가득히 펼쳐져 있음을 깨달은 순간,

두려워졌다.

그건 필시 「고독」이란 감촉이었다.

「그때. 당신을 데리고 돌아와 준 분은 계셨습니까?

「돌아보니 바로 뒤에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아이가 하는 생각이란 결국 어른에겐 훤히 읽히는 법이지요——」

아오미 씨에게도,

그 몸을 안아 들고 눈을 털어내 준 사람이 있었으리라.

 

 

 

산 두 개를 넘자, 갑자기 시야가 푸르게 트였다.

바다다.

섬 뒤편이다.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멈춰 섰다.

바다 저편에는 오시마섬이 떠 있다.

아오미 씨와 학생들이 사는 그 섬이,

뚜렷한 색채를 발하고 있다.

「오늘, 당신을 데려오고 싶었던 곳이 여기입니다」

「……그랬군요」

「당신에게도 바다는 낯설지 않겠죠.

 그래도, 여기서 보이는 오시마섬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걸 전하고 싶어서——」

「안 됩니다」

아오미 씨는 바다를 바라본 채 그렇게 말했다.

「산에 와서 다른 산을 칭찬해서는 안 됩니다.

 섬에 와서 다른 섬을 칭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어머님의 가르침인가요?

「네. 그런 말을 하면

 땅의 여신이 저쪽 여신을 질투하게 된다고」

「신기한 전설이네요」

「누구에게도 원망을 사고 싶지 않은 법입니다. 저도——」

「네?

아오미 씨는 말의 마지막을, 분명히 나를 보며 말했다.

 

아연해진 나를 남겨둔 채, 그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전망대 끝에서 몸을 내밀더니 흰 파라솔을 높이 쳐든다.

「아오미 씨!?

「오오사키 씨. 이 우산을 높이 들어 주세요.

 표지가 되도록. 저 요트에 닿도록」

바다 위에는 스나이프급 요트가 있었다.

그것은 오시마섬 방향에서 똑바로 이쪽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나는 파라솔을 받아 들고서 시키는 대로 흔들었다.

태양빛이 난반사한다.

손잡이에 붙은 가격표를 눈치챘다.

아오미 씨는 이를 위해 흰 파라솔을 산 것이다——

요트의 돛이 바람에 흔들리며 눈부신 빛을 반사한다.

그것은 요트가 보내는 답신이었다.

 

 

아니,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오시마섬에서 에노섬까지, 저런 작은 요트로…….

 

「그의 요트가 없어진 걸 보고 가출을 깨달았다 합니다」

 

후방에는 커다란 배가 있다.

경찰 쪽 배다.

예의 사례와 같이, 소년은 어른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우리는 바위가 깔린 곳으로 내려섰다.

요트 접안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사정을 짐작한 사람들이 해안가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선체가 튀어오를 때마다 잘게 물보라가 튄다.

위태로운 행실에 어른들은 숨죽이고 시선을 집중한다.

 

위험하다.

무자각하다.

하지만 나는 소년을 책망할 수가 없었다.

「꾸짖으실 건가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가냘픈 목소리로 묻고 말았다.

아오미 씨는 아주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이어 미소를 머금었다.

「꾸짖지 않을 겁니다」

그대로, 시선을 다시 바다로 돌린다.

「학교에서 받은 연락은, 시급히 오시마섬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게 학생 조사를 부탁하고 싶다고.

 하지만 거절하고 여기로 왔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한 번 바다로 나가면 돌아오지도 가라앉지도 않을 학생이란 걸.

 그의 피아노를 들은 날부터——」

그가 그 미소를 나에게도 보여 주었다.

「여기 온 건 그저. 『마중』이 없으면 쓸쓸할 테니까요」

「저는, 도움이 되었을까요?

「네. 여기까지 헤매지 않고 안내해 주신 덕분에

 좋은 피아노 연주자를 영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트가 암초에 걸렸다.

눈 깜짝할 새 뒤집힌다.

내가 바다에 뛰어들어 학생의 몸을 건져 올렸다.

 

요트는 파도에 부서져 갔다.

학생은 선생님의 얼굴을 보더니,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나룻배에 부탁해 섬 정면까지 태워 달라고 했다.

택시 뒷좌석에는 잠든 학생과 그 옆의 아오미 선생님.

그 밖에는 아무도 타지 않는다.

「——지금부터 학생을 데려다 주러 가겠습니다.

 사례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뵙죠——」

택시는 아무런 감흥도 없이 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벤텐다리 입구에는 흠뻑 젖은 남자 하나가 홀로 남았다.

 

……이 꼴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역사의 전화가 눈에 띄었다.

시즈마 씨에게 전화한다면 차를 몰고 와 주겠지.

그 사람이라면 좌석이 젖어도 화내지 않을 거다.

오히려 무슨 말을 듣는다 한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멀어졌다.

 

——섬에서 다른 섬을 칭찬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해 질 무렵 낯익은 거리로 돌아왔다.

젖은 몸을 말릴 겸 걸어온 참이다.

그러나 해안선을 따라 걸어온 탓인지

바닷바람의 소금기가 온몸에 들러붙고 말았다.

머리는 빳빳하게 굳어졌고, 앞머리는 흩뜨리려 해도 풀어지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앞머리를 올리고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셔츠는 오늘을 위해 구입한 물건이었다.

티끌 한 점, 냄새 하나 없도록.

포마드는 이발사에게 골라달라고 한 것이었다.

데이트냐고 묻기에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이것은 「비참」한 거겠지.

하지만 내 마음을 따라 이름 붙인다면,

이건 아마도, 「다행」이었다.

 

아오미 씨의 진지함에 닿을 수 있었다.

교사로서의 옆모습을 이토록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내가 줄곧 바라던 일이었다——

 

 

 

 

 

 

오렌지빛 석양과 함께 현관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늠름하게, 깊은 푸른색의 실루엣이 앉아 있었다.

「아오미 씨?

「먼저 와 있었습니다. 늦으셨군요」

「돌아간 게 아니셨나요」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학부모님께서 비행기로 데리러 오셨습니다」

「정말로 부유한 가정이네요……」

「섬 안에 배가 다섯 척. 차가 세 대. 그리고 피아노가 한 대.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무래도 지루했던 모양입니다」

사치스럽다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가지지 못한 것과 다름없는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이것으로 한 건 해결이다.

 

아오미 씨는 일어서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늘부터 사흘간 신세 지겠습니다. 본래 예정대로」

「부디 편히 들어오세요——」

 

 

정식으로, 아오미 씨가 찾아왔다.

 

 

그는 방 한구석에서 간소한 짐을 풀었다.

갈아입을 옷이나 일용품,

그가 두른 분위기가 이 방에 깃들어 간다.

 

그는 정장을 벗고, 일본식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허리띠를 다 매었을 무렵, 어깨 너머로 내 쪽을 돌아본다.

「당신 향수. 향이 좋네요」

「향수……?

「오늘 입으신 옷이나 머리만큼 청결히 신경 쓰셨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뇨, 특별히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렇다면 히이로 씨. 당신의 향이었군요」

 

여름은 역시 갑작스럽다.

저녁노을이 홀연 밝게 빛나며 시야를 온통 물들였다.

 

「카에데 씨」

「네」

「어서 오세요」

 

누구의 선생님도,

누구의 지인도 아닌.

이 시간을 맞이하여,

그를 마침내 품에 끌어안았다——

 

 

 

 

 

「쇼난십경 -섬-」1958.아오미 루트

 

 

 


원문: 오오에 공식 홈페이지

 

화자의 이름이 표기된 버전: 링크

 

 

이름 표기 버전에서는 마지막 대화에서 풀네임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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