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난십경湘南十景」 시리즈
⇒ 여름의 쇼난을 그리는 단편집
타케시바 편 -안주-
화창한 일요일.
가타세(片瀬)의 바닷바람이 아쿠아월드의 거대한 흰 벽을 스쳐 지나간다.
해변에 우뚝 솟아 있는 이 건물은
올해 신설된 수족관인지라 여태 콘크리트 냄새도 가시지 않았다.
탁 트인 원형 구조——중앙에는 커다란 풀장이 채워져 있다.
마치 바다를 떠서 담아온 듯한,
있는 그대로의 깊은 푸른색이었다.
우리는 옥상에 있었다.
신바시 씨는 쌍안경에 잔뜩 열중한 채,
안절부절못하며 시야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그 남자가 온다는 겁니까?」
「틀림없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일.
신바시 씨의 극단에서 진주 반지가 홀연히 사라졌다.
단원들의 말에 따르면,
「외부 청소부」가 창고에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나는 남자의 소행 조사를 부탁받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일찍, 어느 소문 하나에 다다랐다.
「남자는 수시로 전당포에 드나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소소한 도둑질을 반복하며 돈으로 바꾸던 모양입니다」
「상습범이었나요.
하필이면 극의 핵심인 소품을 훔칠 줄이야」
「다행히 그 반지를 환금한 낌새는 없습니다」
「말인즉 아직, 남자의 수중에……」
「예.
그리고 『주말 돌고래 쇼에서 새로운 연인에게 반지를 건넬 생각이다』라고,
단골 술집에서 호언장담했습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찾았습니다!」
신바시 씨가 소리쳤다.
맞은편 2층 관객석 끝에 낯익은 남자가 있었다.
「옆에 계신 분이, 예의 그 연인인 모양이로군요」
「연인?」
쌍안경을 빌린다.
그러나 여전히 상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남자 옆엔 남자밖에 없습니다만」
「그러니 그 남자가 남자 연인이겠지요」
두 사람은 정답게 팔짱을 끼었다.
강렬한 햇살에 눈이 부셔,
나는 무심결에 쌍안경을 내렸다.
「……안 놀라십니까?」
「?」
「남자의 연인이, 남자였다는 것에……」
「딱히, 별생각 없습니다.
배우의 세계에서는 드문 일도 아닐 뿐더러,
편견 또한 없습니다」
신바시 씨가 지닌 뜻밖의 성격에, 언제나 놀라게 된다.
「그건 그렇고!
끈적끈적하기 그지없는 게 열렬해서 못 봐주겠군요!」
「진정하세요.
반지를 확보할 거라면 현행범으로 덮쳐야 합니다」
「지금 당장 찢어놓고 싶은 참입니다만, 어쩔 수 없군요」
「그런데 문제는…… 저 남자가 언제 반지를 꺼낼지」
「그야 뻔하지요. 당연히 「고리 통과」 순간이겠지요」
당연히, 고리 통과……?
풀장 옆의 무대에 공이나 후프가 늘어서 있다.
돌고래용 장난감이다.
그 장난감들은 수면에 반사된 빛을 받아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가장 눈부신 것은, 공중에 매달린 후프다.
「이 쇼 최대의 볼거리, 돌고래 대점프.
돌고래가 저 고리를 통과하는 순간,
남자는 결행할 터!
나, 나라면, 그, 제일, 아름다운 장면에서,
반지를 꺼낼 겁니다……!」
「……뭔가, 흥분하지 않으셨습니까?」
「뭐? 분노 외에 다른 감정이 있겠습니까?」
공상가로서의 기대와 경영자로서의 분노,
신바시 씨 자신조차, 상반되는 두 개의 열정에 자각이 없다.
그나저나, 과연 극작가의 통찰력이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들뜬 마음을 몇 수 앞까지 읽고 있다.
좌우간, 쇼가 시작하지 않으면 일은 진행되지 않는다.
머지않아 경쾌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파도 소리가 지워지며 관객의 주목 역시 무대로 쏠린다.
발놀림이 활기찬 인형탈이 나타났다.
——く자 모양으로 휘어진 새하얀 몸, 커다랗고 검은 눈,
다리라고 생각했던 건 아무래도 꼬리지느러미.
「레이디~스・앤・젠틀맨~!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
「……타케시바 씨?」
「뭐어?」
「인형탈 쓴 분의 목소리, 타케시바 씨입니다」
「설마, 잘못 들으셨겠지요」
신바시 씨는 코웃음을 쳤다.
「이건 아쿠아월드의 돌고래 쇼라고요?
개막 공연이라곤 해도,
타케시바 씨 따위에게 섭외가 들어올 리 없습니다」
「그건, 그렇네요……」
변명의 여지조차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무대에만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지금 감시해야 할 상대는 따로 있음에도…….
「네~엡! 쇼난 아쿠아월드에 오신 걸 환영해요!
돌고래 군을 만나러 와 줘서 고마워!
난 돌고래 군의 친구, 치어 군!
아기 멸치야!」
웅웅웅, 하고 마이크에 노이즈가 섞인다.
이따금씩 키~잉 하는 소리가 울린다.
그 조잡함이, 미안하지만, 타케시바 씨다웠다.
「이제부터 돌고래 군이 찾아올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약속할 게 있어요!
들어줄 사람~?」
「들을래~!」
「고마워 고마워~!
우선, 첫 번째!
돌고래 군은 반짝반짝한 걸 아주 좋아해!
뭐든지 입에 넣어버린다구!
그러니까 풀장에는 물건을 던지지 말아 줘?
이해한 사람~?」
「이해했어~!」
「고마워 고마워~!
두 번째!
돌고래 군은 장난을 아주 좋아해!
1층에 있는 친구들한테 첨벙첨벙 물을 뿌려버릴지도 몰라~.
카메라나 장난감이 젖지 않도록, 가방 안에 넣어 줘!」
아이들은 목소리로,
어른들은 박수로 대답했다.
치어 군의 훌륭한 무대 매너였다.
당황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진행하며,
관객 하나하나의 목소리에 몸짓으로 화답한다.
공연장의 분위기가 따스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이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새로이 이끌려 오는 관객도 있었다.
「——슬슬 돌고래 군의 준비가 끝난 모양이야.
모두 『하나~둘』 하면 돌고래 군이랑 형을 부르자!
앗, 깜빡했다,
형은 돌고래 군과 사이 좋은 인간 씨야.
자, 준비됐니?
하나~둘, 돌고」
「도망쳐어어어어어」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단숨에 핏기가 가셨다.
——무대 뒤편에는 사육용 풀장이 있고,
큰 풀장과는 물속에서 이어져 있다.
그 문은 아직 닫힌 그대로다.
돌고래는 무대와 무대 뒤편을 가르는 약 3미터의 벽을 뛰어넘어,
이쪽에 있는 큰 풀장의 물 위에 착지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훌륭한 도약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나온다.
……그로부터 뒤늦게 「도망쳐」의 의미를 뇌가 이해했다.
돌고래가 무대로 뛰어오른다.
치어 군의 옆구리를 베어 물었다.
「으갸아아아아아」
그 기세를 몰아 무대를 미끄러지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마이크는 마지막으로 침몰하는 소리를 포착하고 끊겼다.
돌고래는 치어 군을 입에 문 채,
풀장을 휘젓듯 헤엄쳐 다녔다.
이따금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가, 또다시 깊이 잠수한다.
……대체 무슨 관람을, 강제당하고 있는 거지.
무대 뒤편에서 땀범벅이 된 사육사가 나타났다.
그 역시도 이 광경 앞에서 망연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나 곧장 표정을 바꾸더니,
어디론가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음악이 한층 떠들썩하게 바뀐다——
「안녕!
트레이너 형이에요!
여름 특별 쇼 「바다 친구들」에 오신 걸 환영해요!
이미 시작됐다구요~!」
「!?」
「돌고래 군은 육식 동물!
오징어 씨나 문어 씨,
부드러운 물고기를 먹고 살아요!
그래서 기운이 넘치고 힘이 세답니다!」
「헤에」
「신바시 씨 큰일났습니다! 사고가 일어났어요!」
「전개는 최악입니다만, 관객 반응은 좋은 모양이고.
흥행으로서는 성공 아닌지요?」
「……!?」
얼어붙어 있던 관객들이 띄엄띄엄 웃음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도망쳐」라고 외쳤던 사육사도 손뼉을 유도하고 있다.
치어 군은 여전히 맹렬한 속도로 치이고 있다.
이런 게 쇼일 리가 없다.
……지옥이었다.
그런가.
그런 거였구나.
목소리, 몸짓, 극도의 불행 체질.
치어 군이 타케시바 씨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타케시바 씨에게 의뢰가 온 시점에서,
이 쇼는 끝장나 있었던 거다.
돌고래가 느닷없이 속도를 올린다.
치어 군을 냅다 공중으로 던진다.
원심력에 의해 고속 회전하며,
물보라를 흩뿌린다.
문득.
언제였던가.
술자리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있지있지 오오사키 군. 이 가게,
돌고래 사시미가 있다는디~』
『신기하네요, 시킬까요?』
『아니아니!
돌고래를 먹다니 끔찍하단 얘기입니다.
서양에선 신의 사자라고들 캐서.
영혼을 저세상으로 델꼬 간대』
치어 군이 뚝 멈췄다.
운 좋게도, 공중에 있는 후프에 걸려 있었다.
바로 아래서는 돌고래가 얼굴을 내밀고,
캬~ 캬~ 하며 새된 소리로 웃고 있다.
……일단은, 살아서 다행이다.
안도한 것도 잠시,
쌍안경을 사용하던 신바시 씨가 다른 방향에 대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탐정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지금, 저 도둑의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
「진지한 표정……! 무언가 행동을 취할 작정입니다!
아아~앗 지금!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습니다!!」
「어……?」
「저건……반지!?
반지입니다!
진주 반지를 꺼냈습니다!!!」
「절대로 잘못 보신 겁니다. 지금은 고백할 장면이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신바시 씨는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풀장으로 시선을 되돌리자, 치어 군이 후프째로 옆으로 이동하고 있다.
창백해진 직원이 필사적으로 밧줄을 당기고 있었다.
「치어 군, 다음에 또 봐!
이어서——」
쇼는 계속된다.
근처 관객에게 좌석을 양보하고,
환호성으로부터 멀어졌다.
시설 뒷문에서 그를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를 축 늘어뜨린 타케시바 씨가 나타났다.
머리에서는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나를 보자마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에에……? 오오사키 군……?」
「역시, 치어 군은 타케시바 씨였군요」
「에에에……. 아까 그거 전부, 봤나?」
우리는 별말 않고 걸음을 옮겼다.
별관, 아쿠아랜드에 들렀다.
커다란 해파리 수조 앞에서,
간신히 단둘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최악이다. 와 니네가 이런 데 있노……」
「타케시바 씨야말로, 어쩌다 인형탈을」
평소에는 아사쿠사에서 매직을 선보이고 있을 터인데.
「희극인 동료가 부탁했다.
허리를 삐끗해서 못 움직이겠어~
누가 대역 좀 맡아줘~ 카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하하. 맞다맞다.
평소의 내한테 이래 큰 무대를 맡길 리가 없다 아이가?」
지금, 쇼의 환호성은 어디에도 없다.
귀를 채우는 것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 펌프 소리뿐.
눈앞에 있는 것은,
마치 한숨 같은 해파리의 박동.
이 광경이 서글프게 느껴질 만큼, 내 마음도 가라앉아 있었다.
「……타케시바 씨. 약속해 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
「……섣불리 일감을 받지 말아 주세요」
「음─」
타케시바 씨는 곤란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남이 보면 태평할 얼굴이다.
나만이 진지했다.
「보수 얘기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기예가 제대로 사랑받는 자리에 계셨으면 합니다」
「음~」
「……당신이 당신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곳이,
분명 있을 겁니다」
「말도 이쁘게 해주고, 고마버라~
내가 바보일 뿐인데 말이다」
나는 방관자 주제에 멋대로 분개하고 있었다.
형편없는 운영도,
그걸 좋은 셈 치는 타케시바 씨도,
모두 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는 어느샌가 수줍어하고 있었다.
「그치만, 오오사키 군.
이런 일, 포기할 수가 없다.
곤란한 사람을 보면, 내삐리 둘 수가 없어가꼬요.
와 그라세요, 하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버려요」
「……」
「누굴 닮아뿟나~」
「…………」
「니 때무이다~」
「전 분수에 맞지 않는 일에는 손대지 않습니다.
실패하면 본전도 못 찾으니까요」
「아으…… 아까 개막 공연, 역시 실패였을까예?」
「……저에게는 대형 사고였습니다만,
희극인의 대처로서는 성공이라고 하더군요」
「나하~♡」
물기가 다 마를 무렵,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기울어 조금은 선선하다.
뜻밖에도 신바시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찾아다녔습니다, 탐정님.
여기 오늘 치 사례입니다」
「죄송합니다, 범인을 끝까지 쫓지 못해서」
「아뇨. 반지는 무사히 되찾았습니다.
——역시, 그런 장면에서 성립할 턱이 없지요」
그는 가슴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가 바로 다시 넣었다.
그리고 타케시바 씨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당신은 왜 여기에?」
「……내를, 눈치 못 챘다꼬……?」
「뭐?」
「아아~ 그게 말이다~.
다 같이 돌고래 요리 묵으러 가자!!?」
「뭐어?」
「등 푸른 생선한테 복수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돌고래는 포유류입니다만?」
「생선 아이가?」
「생선일 리가 없잖습니까」
「금마들 우짠지 똑똑하더라, 그라믄 못 이기제……」
「윽, 잠깐! 탐정님, 이 남자 좀 어떻게든 해 주시지요!」
신바시 씨에게 달라붙는 타케시바 씨.
뒤엉키는 두 사람의 등을, 나는 천천히 뒤쫓았다.
인간이란 참으로 까다로운 생물이다.
금은보화에 기뻐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맛있는 밥에 더 기뻐하는 사람도 있다.
도둑의 연인도 분명 후자였으리라.
나는 아직 그 어느 쪽도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하나의 보석보다,
하나의 해물덮밥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편이 어쩐지 생물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할 때마다 떠올린다.
치어 군을 깨무는,
돌고래 군의 미소를——
「쇼난십경 -안주-」1957.타케시바 루트
원문: 오오에 공식 홈페이지
화자의 이름이 표기된 버전: 링크
사투리 검수 도움: Rurut Lee
제목인 肴(안주)와 魚(생선)의 발음이 사카나로 동일한 재미 포인트가 있습니다.
안주는 술안주 할 때 그 안주입니다.
치어의 원문은 시라스シラス인데, 여러 물고기들이 알에서 막 깨어난 상태일 때 희게 보이는 데서 시라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므로 뜻만 본다면 특정한 품종은 아닙니다.
다만 배경이 되는 가타세에는 신에노시마 수족관이 있고, 이곳에만 시라스 생체의 상설 전시가 있으며, 멸치 새끼를 부화시켜 전시한다고 하네요. 덤으로 돌고래 쇼도 있습니다.
- 稚魚;알에서 깬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물고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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