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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난십경湘南十景」 시리즈

⇒ 여름의 쇼난을 그리는 단편집

 

시죠마에 편 -조개-

 

 

 

메이지 시대.

일본은 구미[각주:1]의 기술을 도입하고자 외국인 채용을 추진했다.

독일 의사 에르빈 폰 벨츠[각주:2] 또한 그중 한 사람으로,

교사로서 일본에 온 뒤 이 땅에 정착하여 의료를 뒷받침했다.

 

벨츠가 쇼난 해안을 「이상적인 보양지」로 지정함에 따라,

이후 해안선을 따라 열 곳이 넘는 요양소——

새너토리엄[각주:3]이 건립되어 간다.

 

 

벨츠는 특히나 시치리가하마를 사랑했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다

그렇게 기록했을 만큼.

 

 

 

 

오늘 시치리가하마는 정오의 빛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파도치는 해안가로 다가가자,

바다의 향취에 소독액 냄새가 섞인다.

그것은 바로 옆 언덕에 세워진 새너토리엄의 시선이었다.

 

 

파도 속에는 15, 6살 먹은 소녀가 있었다.

짙은 녹색의 수영복.

해초처럼 검은 땋아 내린 머리.

빛이 없는 눈동자.

전화로 들은 목소리의 인상 그대로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탐정이신…………」

오오사키입니다. 당신이 구미 씨군요

예이

그녀의 수줍은 목소리는

때때로 바닷바람에 사라질 듯했다.

구미 씨.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만 의뢰에 대해——

저기이……그게에……저기이……」

그녀는 곤란한 기색으로 넓은 해안을 둘러본다.

의뢰는, 겁나 큰 이 해변에 있어요.

 요전에 여기 왔을 때, 머리 장식을 떨어뜨려 버려서.

 나머진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고요

「……」

오오사키 씨. 엄청 힘들겠지만,

 지랑 같이 좀 찾아주십쇼

난폭한 사투리에 가끔씩 놀란다.

그러나 요약하자면 간단한 일로, 분실물 찾기였다.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

유실물 수색은 경찰이 담당할 업무입니다.

 탐정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시설에 문의하는 일 정도입니다

그런가요오……」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렇담 전화했을 때 거절하셨어도 될 텐데.

 일부러 와 주시다니.

 게다가 겁나 큰 갈퀴까지 메고서

수색이 경찰의 업무라곤 하지만,

 사건성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게 경찰이니까요.

 오늘은, 제가——

 

이리하여,

나는 모래를, 그녀는 파도를,

나란히 수색했다.

 

문득.

뜨거운 모래 속에서,

분홍색 빛을 발견한다.

작은 붉은줄접시조개였다.

햇빛에 비추어 보려고 들어 올리니, 빛이 반짝이며 부서졌다.

「붉은줄접시조개, 거기 널려 있어요~

주위를 둘러본다.

해변이 지닌 반짝임은 모두, 다양한 농담(濃淡)의 붉은줄접시조개였다.

이래서야 눈이 부시다.

머리 장식의 특징은?

녹색.

 에메랄드보다 예쁜,

 녹색 유리가 달려 있어요

다시 모래를 얕게 팠다.

그러자, 광택이 희미한 조개가 눈에 띈다.

구미 씨, 이런 색입니까?

나는 바다로 다가갔다.

그녀는 해변으로 돌아온다.

손바닥에 올린 조개를, 그녀는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맞아맞아.

 근데 이거, 초록담치네에

초록담치?

일본에선 볼 수 없는 남국 조개예요.

 다른 배에 붙어서 왔나 보네요.

 이건——외래종

 

거센 파도가 우리 발밑을 낚아챘다.

젖은 발보다도, 어느샌가 그녀의 시선이 더욱 무거워서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는 당신이 되게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근데, 아니었네요오

 

그녀는 조개를 든 손을 뒤로 돌리고,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해류가 만나는 경계는 태양보다 눈부셨고, 그녀와 여울에 있는 사람들을 그림자로 만들었다.

모두 홀쭉하게 야위었고, 생기가 없었다.

여기 있는 건, 새너토리엄의 환자분들이에요.

 바닷바람에는 바다의 영양이 있으니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는 거죠

「……당신도, 여기 분이신가요

아뇨.

 지는 이미 나았어요

 

그녀는 양손을 뻗고,

얼룩진 딱지를 군데군데 어루만졌다.

매독 흉터였다.

 

이 상처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어요.

 조개가 이물질을 삼키고 아름다운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몸이 열심히 상처를 아물게 한 증거라고.

 “선생님”이 말해 줬으니까……」

「……선생님……?」

 

파도가 높아진다. 바닷물이 다리에 들러붙는다.

 

지는, 당신 목소리를 듣고서

 늑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코가 좋고, 집념이 강하고.

 뼈다귀를 물면 저어얼대로 놓지 않는 고집쟁이.

 근데 막상 만나 보니 또 다르네에?

 

……처음부터, 이 의뢰는 이상했다.

 

당신은 제 이름을 어디서 알았습니까?

최대한 냉정하게 묻는다.

사모님이랑 이야기 나누실 때.

 , 옆에 있었거든요

사모님……?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

선생님의 사모님.

 지는 선생님 댁에서 일하는 애예요

선생님, 이란 건——

 

~ 오오사키 씨!!

 모르는 척하면 안~!!!

 가하하——

 

그녀의 목소리는 거센 바닷바람에 지워지고.

내 사고 역시 갈가리 찢겨 나갔다.

 

당신을 만나려고, 거짓 전화를 걸었던 거예요

무슨, 목적으로……」

당신이 없어져서, 선생님이 괴로워하시니까

……?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선생님을 만나 줬으면 해요

 

해가 기울고, 주변은 어스름에 휩싸인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나무라듯, 천둥이 울려 퍼진다.

마치 소녀의 노호처럼 느껴져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도망쳐야 한다

 

발뒤꿈치에 힘을 준, 그 순간.

그녀는 조개껍데기를 꽉 쥐고, 스스로의 손목에 그었다.

 

당신!!!

 

그 찰나에 파도를 헤치고, 쓰러진 그녀를 건져 올린다.

팔에서는 많은 양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대낮의 해안이 술렁인다.

뒤편의 언덕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동차가 달리고 있었다.

 

저거……선생님 차……」

 

차에서 내린 남자는,

해변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한 채 새너토리엄으로 향한다.

 

오오사키 씨.

 도망치지 말아요…….

 저를, 선생님한테……」

 

주위를 둘러봐도 그녀를 안고 달릴 수 있는 이는 없다.

……더는,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상처를 막을 수 있는 건 의사밖에 없다.

 

나는 그녀를 안고,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

 

 

 

 

 

기다려 주세요!!!

 

현관 앞에서 남자를 불러 세운다.

남자는 천천히 돌아보며 앞으로 내디뎠던 한쪽 발을 거둔다.

피투성이 소녀와 그 피로 더럽혀진 나…….

그녀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옅게 웃으며,

힘없이 손가락을 뻗는다.

남자는 그 손가락을 단단히 잡고——한숨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런 뜻밖의 모습으로부터,

그녀의 상처가 얕으며, 엄살이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선생님. 오오사키 씨. 데려왔어요

「……」

그치만. 안 와주는걸요, 오오사키 씨

남자는 소녀를 안아 올렸다.

그러고는 살짝 허리를 굽혀,

마침내 나와 눈을 맞추었다.

——

 

 

 

 

 

자네는 누군가?

 

 

 

 

 

선생님……?

「……구미. 불필요한 수고를 했군

어째서어?

하여간. 어쩔 수 없는 아이로다

소란을 눈치챈 간호사들이 달려온다.

남자의 시선을 받자마자

즉시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며

소녀를 실내로 옮겨 갔다.

남자는 피 묻은 손을 닦으며,

재차 반쯤 몸을 돌려 돌아보았다.

 

소년. 자네는 돌아가게나

 

텅 빈 양팔에 겉옷이 걸쳐진다.

새너토리엄의 문은 무겁게 닫혔다.

 

 

 

소독액 향취에, 바닷바람 냄새가 섞인다.

두꺼운 구름이 몰려오며 큰비를 뿌린다.

내 시야도 윤곽도, 모든 것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선배가 사라진 지 2주일.

나와 신키바 씨는, 선배를 찾고 있다.

 

내가 선배에게 온 의뢰를 거절하지 않고 그 이름을 빌린 것은.

선배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오기와도 같은 마음이었다.

 

 

 

홀연히 사라진 오오사키 선배.

어째서인지 선배의 이름을 아는 소녀와, 침묵하는 의사.

그리고 선배의 집에 남겨져 있던, 어떤 남자의 조사서.

거기에 적혀 있던 이름은 분명——

 

 

시죠마에……?

 

 

 

돌아본다.

흰 벽의 새너토리엄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듯이 보였다.

두 개의 창문은 시죠마에의 시선 그 자체가 되어,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쇼난십경 -조개-1956.시죠마에 루트

 

 

 


원문: 오오에 공식 홈페이지

 

화자의 이름이 표기된 버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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