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난십경湘南十景」 시리즈
⇒ 여름의 쇼난을 그리는 단편집
신바시 편 -언덕-
「당신께 의뢰가 있습니다」
탐정사로 들어온 신바시 씨로부터의 소식.
나는 서둘러 어떤 장소로 달려갔다.
8월이 한창인 금요일.
산 정상의 레스트하우스는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신바시 씨는
길어진 머리를 뒤로 묶고,
막 잠에서 깬 듯 옷이 흐트러져 있었다.
「평안하셨는지요」
「안녕하세요 신바시 씨」
「불러내어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여기. 이번 의뢰비입니다」
「됐습니다」
「일 때문에 당신을 부른 것인데요?」
「때마침 시간이 비어서 조퇴하고 왔습니다」
「……됐으니까 받으라고.
한량. 빈민. 가난뱅이」
「그런 말에 발끈할 제가 아닙니다.
포기하세요」
「당신 가족분들께 내가 비상식적인 남자라 여겨지면 어떡합니까」
「제게는 상식적인 태도를 취해 주시지 않는 겁니까?」
「그러니까, 상식적인 액수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돈을 떠맡고 말았다.
창가의 구석진 안쪽 자리.
창문으로 오이소(大磯) 마을과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이곳 쇼난다이라(湘南平)1는 본래 센조지키(千畳敷)라는 딱딱한 이름이었으나,
풍치 공원을 지향하며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우리와는 연이 없는 장소다.
그런 곳에 불러내기에,
중대사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그래서, 의뢰 내용은」
신바시 씨는 손수건 한 장을 꺼냈다.
조심스럽고, 정중하고, 극진한 태도로 책상에 놓는다.
네 번 접었음에도 여전히 커다란 흰 천이었다.
「지난번 공연 후에, 이것이 객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이 손수건의 주인을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나도 그와 똑같이, 느릿한 손길로 손수건을 만져보았다.
손수건 끝에는 이 레스트하우스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
주인과 이 장소 사이에,
모종의 인연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어려운 의뢰다.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건 인지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히라츠카에 살고 계신 당신이라면,
무언가 알지 않을까 하여……」
「확실히 히라츠카와 오이소는 이웃하고 있습니다만,
오이소는 특히나 관광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레스토랑도 올봄에 막 생긴 차입니다」
「그럼 주인은 근처에 사는 분이 아니라,
관광하러 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네. 손수건도 저쪽 매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 같습니다」
나는 계산대 옆을 가리켰다.
손수건이나 펜, 커피 원두 등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가게는 내내 붐비고 있었다.
염천을 피할 길이 없는 산 정상이기에,
시원함을 찾으러 사람이 모여든다.
남국의 음악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활기찬 장소에서,
신바시 씨는 그림자처럼 진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손수건의 주인은 상수2 맨 앞줄, 가장 끝자리에 계셨던 분.
머리가 짧은 여성분이셨습니다」
「거기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예전부터 오셨던 분이니까요」
바야흐로 천 명에 달하는 대극장을 들썩이게 만드는 작가가,
무대 뒤에 서서, 한 명의 관객을 기억하고 있다니.
「용모파기를 만들어서 웨이터에게 물어봅시다」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주문조차 받으러 오질 않는군요」
웨이터는 여럿 있었지만,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신바시 씨의 아이스 커피를 빼앗아 마셨다.
「아」
「어찌 됐든 단골이라면,
손수건을 돌려줄 방법은 그 밖에도 있습니다.
내일 신작 공연에서,
공연장에 오셨을 때——」
「오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신바시 씨는 그리 말하곤 입술을 비비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시선을 들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그의 초조감을 눈치챘다.
「——이 손수건은 분실물이 아니라,
내게 보내는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보시지요, 이 직접 놓은 수많은 자수들을요.
이쪽의 「외등外灯」은 작년 공연의 모티프.
이쪽의 「돋보기」는 그 전의 모티프.
그리고 이쪽의 자수는, 플루토의 극단 마크」
그러자 어째서인지 손수건을 든 손이 갑자기 무겁게,
그리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주세요.
이것이 내게 보내는 선물이라 한다면,
어째서, 손수건이었을까요?
선물의 형태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손목시계든, 만년필이든, 편지든.
하지만, 손수건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손수건을 선물하는 의미, 그것은——영원한 이별」
그는 창문을 보며,
바다의 색채를 눈동자에 담았다.
눈물을 참으며. 눈동자의 떨림을 파도의 물결 탓으로 돌리려 하고 있었다.
「눈물을 닦게 하고자, 고인은 손수건을 선물한다 합니다」
「고인?」
「이 바다를 보며 확신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제, 두 번 다시 극장에 오지 않으실 거라고.
그분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다고——」
「……」
「바늘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분의 섬세함. 민감함.
그리고 펼쳐지는 바다. 수영 금지 깃발.
이제는 슬픈 결말밖에 찾아낼 수 없습니다」
「……」
「하다못해 가족분들께 손수건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찌 이리도, 무력한지……」
「최근에 잠은 잘 주무십니까?」
「일주일은 제대로 못 잤습니다」
「그래서 지리멸렬한 사고를 하게 된 거군요」
「네노옴……」
풍부한 상상력이 나쁜 쪽으로 지나치게 비약했다.
여기서는 탐정인 내가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다.
우선 책상 위 한가득 손수건을 펼쳐놓아 보았다.
외등, 돋보기, 빨간 리본, 빨간 힐.
수많은 자수들은, 플루토의 상연작을 더듬어 가는 여행 같았다.
나는 책상에 얼굴을 숙이고, 손수건의 냄새를 살짝 맡았다.
「기분 나빠……」
「냄새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꼴사나워……」
「반드시 찾아냅시다」
분실물이든 선물이든,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틀림없다.
그러자——
「커피 냄새가 납니다.
손수건 끝에 희미하게」
「커피?
제가 주문한 커피와 혼동한 것이 아닌지?」
나는 커피잔에 코를 처박았다.
「히이익!!!」
「확실히…… 완전히 똑같은 냄새네요」
웨이터가 여기로 다가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문 받겠습니다」
「아이스 커피를——」
「꺄아악!!!」
웨이트리스의 비명에 시선이 쏠린다.
그녀는 그런 주위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책상 위의 손수건에 시선을 빼앗겨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손수건!」
「어?」
신바시 씨가 굳었다.
주위는 곧바로 소란스럽던 원래대로 돌아간다.
나는 그저 홀로, 그녀와 마주했다.
「당신의 손수건이 틀림없습니까.」
「네.
외등, 돋보기, 빨간 리본, 빨간 힐,
플루토의 발바닥 마크.
다 제가 수를 놓은 거예요.
이걸 어디서?」
「극장 좌석에서」
「내가 극장에 떨어뜨렸구나」
신바시 씨는 머리를 싸매며 책상에 엎드렸다.
「분실물 같아서,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그녀는 손수건을 움켜쥐고 눈물을 글썽였다.
「오빠도 플루토를 좋아하세요?」
「네」
「언제부터?」
「3년 전——아니 4년 전부터」
「어떤 점을?」
「관객을 생각하는 점을요」
「분명 다정한 분이시겠죠」
「작가가 직접 객석을 청소할 정도니까요」
보통 같으면, 떨어진 손수건 따윈 쓰레기로 여겨 치워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신바시 씨는 무대 사람이기에
손수건을 주워 들었다.
어떤 것이든, 누군가의 소품일지도 모르니까.
신바시 씨가 자리를 떴다.
나는 황급히 쫓아 나갔다.
웨이트리스는 곧바로 손수건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밖으로 나오자 매미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한여름의 빛은 풍경을 흐릿하게 만들고
그림자만을 선명하게 한다.
반만 돌아본 신바시 씨는,
아랫입술을 내밀곤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한 방울, 눈물을 떨어뜨린다.
안도의 눈물이었다.
「죄송합니다. 평정을 잃었습니다.
터무니없는 기우였습니다.
주인이 점원이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진작 알아챘더라면, 전화 한 통에 끝났을 것을」
「헛걸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
「구해낼 수 있었으니까요」
신바시 씨의 인간 분석은 빗나간 적이 없다.
그녀의 눈물은 분명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이곳에 오길 잘한 것이다.
우리는 마을로 내려가는 버스에 탔다.
신바시 씨는 맥이 풀려,
커피의 효과는 아랑곳 않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내 단단한 어깨가 있는 것을 깨닫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머리와 몸을 기대었다.
그 무게가 편안했다.
오늘.
그는 의뢰인이고 나는 탐정.
내일.
그는 플루토이고 나는 관객.
모레는 일요일.
누구도 어떤 배역도 아니게 되는 날,
우리는 연인이 된다.
「쇼난십경 -언덕-」1959.신바시 루트
원문: 오오에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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