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ento SS 번역 - 역몽의 거울逆夢の鏡
Lamento -BEYOND THE VOID-
公式ビジュアルファンブックWhite Notes 수록 SHORT STORY (2008)
라멘토 공식 비주얼 팬북 White Notes 수록 SS
역몽의 거울逆夢の鏡
* 역몽逆夢 : 사실과는 반대되는 꿈
역몽의 거울逆夢の鏡
글・후치이 카부라
「알겠어, 안 헤매면 되잖아!」
분노로 가득찬 외침이 선명한 초록빛 잎을 흔든다.
맑은 호수 같은 하늘,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하늘 높이 빛나는 양의 달이 부드러운 빛을 흩뿌리고 있다.
이렇게나 기분 좋은 날이건만 어째서 불쾌해져야 하는 것인가.
갈 곳 없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코노에는 빠른 걸음으로 숲속을 나아가고 있었다.
최초의 발단은 라이의 한마디였다.
검의 손질을 한다기에 그 사이에 식량을 모아 올 생각이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현상범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숲속에서 지내야 한다.
라이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이번에는 어디까지 여행할 생각이냐?」였다.
요컨대…… 길을 잃는 것에 대한 핀잔이다. 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매번 듣자니 화가 난다. 저도 모르게 뛰쳐나와 버렸다.
분을 삭이듯 짧게 한숨을 쉰 코노에는 귀를 조금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란센이 평온을 되찾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코노에는 변함없이 라이와 함께 현상범을 쫓아 각지를 여행하고 있다.
지금껏 여러 상대와 싸웠다. 때로는 궁지에 몰리기도 했으나 산가와 토우가로서 극복해 왔다.
예전에 비하면 자신도 과연 산가로서의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자신을 대하는 라이의 태도는 변함없다.
사사건건 깔보고, 매도하고, 바보 취급을 한다. 그것이 라이의 성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아직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침울해지는 것이다.
생각이 나쁜 쪽으로 향하면, 이 신체 탓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었다.
그날――리크스와의 사투 끝에 쟁취한 삶. 그 대신 남은 것은 리크스의 기억과 마치 동굴 같은 공허함이었다.
그 어느 쪽에도 강한 괴로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한다」.
빛이 넘쳐흐르는 장소를 막힌 것처럼 표정에서는 웃음이 사라지고 감각이 평탄해진다.
그렇기에 라이가 그 일을 신경 쓰고 있지는 않을까 의심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때때로 진지한 눈빛으로 상태를 살펴 오기 때문에, 그때마다 슬퍼졌다.
자신은 이전과는 다른 존재라고 선고받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옅어지고 있지 않을까……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라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공허한 공동을 조금씩이지만 메워 간다.
언젠가 공동은 전부 메워지고 튼튼한 지면을 형성하겠지.
그때는 불안도 없어져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코노에는 식용 나무 열매나 꽃, 약초를 주워 모았다.
어깨에 멘 마대가 제법 무거워졌다. 슬슬 돌아갈까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무언가가 나무들 사이로 지나갔다.
그대로 멈춰서서 시선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인다.
시야 끝에 비치는 것. 즉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무언가, 붉은 천 같은……
――후후.
「……!」
귀에 들어온 희미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
설마.
불러일으켜지는 기억의 잔상. 붉은 의상을 입은 그 모습.
그와 동시에 코노에는 달리기 시작했다.
――자, 이쪽.
풀이 스치는 소리나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뒤섞여,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귀로 듣는다기보다 머릿속으로 직접 흘러들어 온다.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달리는 와중에도 눈으로 주위를 샅샅이 훑는다.
얼핏 지나가는 붉은 형태는 코노에가 고개를 돌리자 곧바로 나무 그늘로 숨는다.
그렇게 쫓아가는 사이 어느샌가 숲속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자신이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코노에는 발을 멈춘다.
나무의 배열이나 지형이 낯설다. 그다지 들어온 적 없는 장소이다.
전력질주를 한 탓에 숨이 찼다. 어깨를 들썩이며 생각한다.
붉은 옷. 그 목소리…… 휘리가 아닐까.
리크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슬픈 결말을 맞은 존재.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휘리는 이미――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무언가가 빛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쪽에 있는 나무의 밑동이다.
만일을 위해 다른 기척이 없는지 확인한 후, 발소리를 죽여 다가간다.
덮여있는 풀 밑에 무언가 떨어져 있다. 그것은 햇빛을 받아 두세 번 반짝였다.
풀을 헤쳐 보자 나타난 것은 거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후타츠즈에의 유적에서 발굴되는 것 같은 파편이 아니라, 원형으로 가공된 데다 호화로운 장식도 달려 있었다.
이것도 후타츠즈에의 기술 덕분일까.
앞뒤로 번갈아 뒤집으며 정교한 조형을 눈으로 훑고 나서, 코노에는 거울 앞면을 들여다 보았다.
「……!?」
쿵, 심장이 떨리는 감각이 든다.
한 박자 느리게 온몸에 오한이 스쳐 지나갔다.
귀 뒤편에서 피가 솟구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시야. 압박으로 헐떡이는 두 개의 폐.
익히 알고 있는, 그러나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
――기억의 공유.
「……으, ……」
설마 또 이 감각에 사로잡히는 날이 올 줄은.
마대가 어깨에서 미끄러져 떨어지고, 벌어진 입구에서 나무 열매가 굴러 나온다.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었다. 녹색과 갈색의 탁한 색채가 시야를 지배한다.
혼란스러운 사고에 잿빛 막이 드리워지고, 천천히 감싸며 꽉 죄어 온다.
괴롭다.
목 깊숙한 곳을 강하게 틀어막힌 것처럼, 코노에의 의식은 서서히 흐려졌다.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어렴풋이 눈을 뜬다.
순간 머리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 무심코 얼굴을 찌푸렸다.
몽롱한 의식을 어떻게든 각성시켜 주위를 둘러본다.
시야가 검고 흐릿해서 멀리까지 내다볼 수가 없다. 한순간 초조함을 느꼈으나 안개 같은 것이 끼어 있음을 눈치챈다.
조금 전부터 코를 찌르는 달콤한 냄새는 이 안개가 퍼뜨리고 있는 것 같다. 꽃꿀과도 과일과도 다른 신기한 냄새.
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멀리서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있는 것일까. 혹은 무언가 있는 것일까.
더욱 주의 깊게 상황을 살피려 했을 때, 그 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렸다.
「……!」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금속질의 소리.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불꽃이 흩어지며 바람이 예리하게 휘감긴다.
무언가 있다.
경계를 부추기듯 꼬리의 털이 곤두선다.
정체를 파악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코노에의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가 나타나고, 이내 사라진다.
귀를 눕히고 자세를 낮추며 코노에는 「그것」을 눈으로 쫓았다.
크게 튀어오른 불꽃이 둘로 나뉘더니 한쪽이 아득히 뒤편으로 날아간다.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날아간 그림자, 그 얼굴은 낯이 익었다.
저것은, 설마.
만약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것은――라이다.
라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만……이상하다.
무언가가 이상하다.
「…………」
라이가 곧바로 도약해 조금 전의 불꽃과 격돌한다.
아연히 바라보며 코노에는 망막에 새겨지는 광경을 확인한다.
위화감의 정체. 본래라면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뿔이 돋아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악마 같은 뿔이.
꼬리도 광택이 있으며 검고 가늘었다.
라이와 맞부딪친 불꽃이 이번에는 코노에의 바로 옆까지 후퇴한다.
움직임을 멈춘 한순간. 또다시 충격이 코노에를 덮쳤다.
검을 들고 상처투성이로 숨을 헐떡이며 응전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다.
자신이, 라이와 싸우고 있다.
「어째, 서……」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빠지며 바닥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어째서, 자신이 라이와.
애초에 자신은 지금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저것은 누구인가?
혼란스러워하며 붙박인 듯 서 있는데, 불현듯 라이가 움직임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표정에, 얼어붙는다.
라이는 웃고 있었다. 몹시 즐거운 것처럼. 싸우는 것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자신이 알고 있는 라이 또한 한때 저런 식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은 거의 사라졌을 터이다. 그런데, 어째서.
눈앞의 라이가 검을 겨누고 천천히 몸을 굽힌다.
전진 신호.
――도망쳐야 한다.
그보다 먼저, 라이가 움직였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만큼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앞에 붉게 물든 칼끝이 근접해 있었다.
「――읏!」
각오하며 눈을 감는다. 그러나 상상했던 충격은 찾아오지 않았고, 대신 뜨거운 공기가 몸을 감쌌다.
조심스레 눈을 뜨자 라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교전하던 자신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는다.
시야에 펼쳐진 것은 천장이 높은 동굴 같은 광경이었다.
어느 틈에 이동한 거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주위를 둘러본다.
몹시 덥고 으스스한 장소이다.
불기둥이 붉은 벽처럼 몇 개나 줄지어 세워져 있고, 지면의 구멍으로부터는 불길이 치솟고 있다.
마수의 포효와 닮은 바람 소리가 울려 퍼져 귀를 떨었다.
솜털을 축축하게 적시는 땀이 기분 나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데도 배어 나온다. 공기 자체가 발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지나친 더위에 귀와 꼬리를 늘어뜨리고 얼굴을 찌푸리며 시선을 빙 돌렸다.
자세히 보니 한 계단 높은 위치에 암벽이 크게 파인 구덩이가 있고, 그 안에서 검은 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니. 검은 덩어리가 아니다. 그림자다.
두 개의 그림자가 야릇하게 흔들리고 있다.
「…………」
코노에는 귀를 세우고 눈을 집중했다. 스며나온 땀이 목덜미를 타고 떨어진다.
침을 느리게 삼킨다.
춤추는 불꽃을 등지고 야릇하게 흔들리는 그림자는 모두 머리에 귀와는 다른 돌기가 있었다. 조금 전의 라이와 마찬가지로 악마의 뿔처럼 보인다.
두 개의 그림자는 얼굴이 맞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끌어안고 앉아 있었고, 움푹 팬 벽에 기대어 있던 쪽이 고개를 들었다.
「!」
또다시, 말을 잃는다.
진홍색 불빛에 드러난 것은, 분노의 악마…… 라젤이었다.
라젤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끌어안은 등을 반복해 쓰다듬고 있다.
어째서 여기에 라젤이?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바람이 강해지며 굉음에 휩쓸린다.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시야가 비스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라젤과 마주 안고 있는 그림자가 완만하게 등을 휘며 허리 아래로 뻗은 꼬리를 흔든다.
어깨 너머로 돌아본, 그 얼굴.
……또, 자신과 같다.
다리에 힘이 빠질 것만 같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달리 악마와 꼭 닮은 뿔이나 꼬리도 돋아 있다. 숫제 악마 그 자체다.
자신의 얼굴을 한 악마는 이쪽을 곁눈질로 보더니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살며시 한 팔을 내밀었다.
이리 와, 하고 유혹하는 것처럼.
순간 격렬한 현기증과 함께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극심한 한기가 엄습해 무의식중에 뒷걸음질 친다.
――다가가면 안 된다. 이것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리며 공포로 뛰쳐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한층 거센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모든 것을 지워 없앤다.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어서 코노에는 시야를 굳게 닫았다.
문득 공기가 바뀐다.
「……어이」
흔들리는 감각과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시야 가득 라이의 얼굴이 비쳤다.
「!」
심장이 멎을 만큼 놀라 벌떡 일어난다. 온몸의 털이란 털이 죄다 곤두섰다.
「왜 그래」
라이가 의아하게 눈썹을 찌푸린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
순간, 악마의 모습인 줄 알았다. 잘못 본 것 같다.
일어서려다가 다시 땅에 앉으며 휴우 숨을 내쉰다.
주위에는 동굴 암벽도 치솟는 불길도 없고, 낯익은 숲의 초록빛이 펼쳐져 있다.
간신히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코끝을 간질이는 흙과 풀 냄새에 안도한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라이가 여기에 있는 것인가.
「라이, 어떻게 여기에?」
물어보자 라이는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어떻게고 뭐고. 너무 늦는다고, 이 바보 고양이가. 곧 달이 질 거다」
「어?」
당황하며 하늘을 쳐다본다. 우거진 나무 너머로 확실히 양의 달이 지평선 저편으로 지고 있었다.
코노에가 식량을 모으러 나갈 때만 해도 아직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건만.
「역시, 길을 잃었군」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는 것도 모자라 예상대로 그 부분을 강조하는 것에 귀를 내려뜨린다.
분명 길을 잃었다. 큰소리 쳐 놓고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조금 전의 의문이 재차 머리에 떠오른다.
어째서, 라이가 여기에 있는 것인가?
……혹시.
「찾으러 와 준 거야?」
묻자마자 라이는 잔뜩 언짢은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흥. 객사라도 하면 뒤처리가 성가시니까」
「…………」
퉁명스레 외면하는 옆얼굴을 보며 따뜻한 마음이 북받쳐 오른다.
이러니저러니 하면서도 걱정해 주는 것은 순수하게 기쁘다.
일어서려고 하다가 오른손에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는 단단한 감촉.
천천히 손가락을 펼치자 원형의 정교한 거울이 나타났다.
「아……」
그러고 보니 이 거울을 건드려서 기억의 공유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전 본 것은 거울의 기억……이라는 것이 된다.
하지만 어째서 라이나 라젤, 게다가 자신까지 등장한 것인가.
전혀 본 기억이 없는 광경이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뭐냐, 그건」
「이건……」
도대체 무엇일까.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저 본 그대로 전부 라이에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라이는 묵묵히 듣고 있었으나, 휘리나 라젤에 대한 일, 라이와 자신이 악마가 되어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표정이 험악해졌다.
「휘리……. 리크스와 함께 있던 그놈인가」
「잘못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그건 휘리였다고 생각해」
붉은 모습. 웃음 섞인 약간 익살스러운 목소리.
휘리의 최후를 떠올리자 가슴이 조금 아프다.
「게다가, 악마가 되어 있었다……라고? 나와 네가?」
「그래. 그리고 라젤도 보였어」
「라젤?」
「악마가 된 나와 함께 있었고, ……그게」
그 광경이 또렷하게 되살아나 그만 시선을 피했다. 뺨이 붉게 물든다.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라젤과 악마가 된 자신은 야릇하게 뒤엉켜 있었다.
어째서 그런 게 보였던 걸까.
「뭐냐. 계속 말해」
갑자기 섬찟 오한이 들었다. 라이를 향해 시선을 되돌리고 흠칫한다.
라이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고 당장이라도 으르렁대기 시작할 것처럼 살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엄청난 박력에 압도되어 당황한다.
뭔가 그 정도로 화날 만한 말을 했던가?
「……쓸데없군」
「어?」
나직이 중얼거린 라이는 코노에의 손에서 억지로 거울을 빼앗았다. 놀라는 코노에의 눈앞에서 거울을 땅에 내려놓고 칼집 끝을 힘껏 위에서 아래로 내리친다.
「아!」
섬세한 소리와 함께 거울에 금이 가고 파편이 튀었다.
「왜……」
그렇게 말하려다 뒷말을 삼켰다.
부서진 거울은 파편과 함께 고운 모래가 되어 풀이나 땅 위에 흩어졌다. 각도에 따라 빛을 반사하는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거울이, 모래로……」
무심코 아연히 중얼거리자 라이가 코웃음을 쳤다.
「휘리든 악마든, 명백하게 이상하잖아. 어차피 멀쩡한 게 못 돼」
「그건, 그렇지만……」
확실히, 결코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환영이든 뭐든 간에 휘리를 보았다는 것은 리크스의 함정일 가능성도 있다.
존재하지 않는 과거가 봉인된 불가사의한 거울. ……아니, 과연 정말 과거였던 것일까?
예를 들면――미래.
혹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그런 일, 있을 리가 없다.
즉각 부정하며 마음속 어딘가에서 생각한다.
어쩌면 정말 함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리크스가 남긴――최후의.
생각에 잠겨 있는데, 돌연 꼬리에 자극이 느껴졌다.
「!?」
오싹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올라 털을 곤두세우고 돌아본다.
라이가 태연한 얼굴로 힘껏 꼬리를 잡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요란하게 흔드는 걸 보니 털고르기라도 해 주길 바라나 싶어서」
말하자마자 라이는 꼬리를 입가로 끌어당겨 보란 듯이 끝부분을 가볍게 핥았다.
「……읏!」
그것만으로 묘한 달콤함이 솟아올라 황급히 라이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놔!」
「도망가고 싶으면 가면 되잖아」
표표히 받아친 라이는 점점 더 강하게 꼬리를 잡는다.
「아얏……윽」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뒤로 잡아당겨져 꼬리 밑부분에 통증이 느껴진다.
심지어는 결정타를 날리듯 털을 사락사락 거꾸로 핥아대서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으……」
「안 도망가?」
웅크리는 코노에를 보며 라이가 심술궂게 입술 끝을 치켜올린다.
라이의 이런 면이 싫다. 굴욕을 견디는 표정이 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말하고 싶을 뿐인 건지, 다 알면서도 일부러 묻는다.
그러나, 자신은 분명 도망치지 못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받아들이고야 마는 것이다.
「이, 런 데서……읏, 뭐 하는……」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여관보다 노숙으로 밤을 새울 때가 더 많잖아」
「그게 아니라……」
꼬리 중간 즈음까지 정성스레 털을 핥고 나서, 라이는 귀를 눕히고 견디던 코노에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대로 아무 예고도 없이 얼굴이 다가와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할짝, 코끝에 축축한 온기가 닿았다.
어렴풋이 눈을 뜨자 가까이에 한심하다는 미소가 있었다.
「뭘 기대했어?」
「……!」
순식간에 볼이 뜨거워진다. 갖고 놀았구나. 알곤 있었지만 열이 받는다. 라이에게도, 걸려들어버린 자신에게도.
낮게 으르렁대자 거만한 태도의 토우가는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들었다.
「빈틈투성이인 네 탓이지. 쓸데없는 것만 생각하니까 그런 거다」
「쓸데없는 거라니……」
그때 문득 깨닫는다. 혹시――
라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을 하도록 해 준 것이 아닐까.
리크스에 대한 일에는 아무리 해도 마음이 흔들린다. 몸 안에 있는 리크스의 기억이 반응해서인지 통증까지 수반될 때도 있다.
그래서 라이와 일상을 보낼 때도 리크스에 대한 화제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것을 염려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는 행동의 이면에 있는 라이의 진의를 조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언뜻 얄미워 보이는 행동에 기뻐질 때도 있다. 직전까지는 화를 냈었는데도.
「뭘 히죽거리고 있어. 기분 나쁘게」
핀잔을 주는 것처럼, 하얀 꼬리가 구부러진 꼬리를 가볍게 친다.
「아니……」
「빨리 가자」
라이가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그 뒤를 따르며 코노에는 거울에 닿았을 때 보였던 영상을 회상하고 있었다.
악마가 된 라이와 자신.
불현듯 어떤 의문이 떠오른다.
「있잖아」
「뭐냐」
「만약 너와 내가 악마가 되면, 어떡할 거야?」
걸음을 멈춘 라이가 의아스러운 듯이 돌아본다.
「……정말 머리를 부딪친 거 아닌가」
「가정했을 때의 얘기야.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떡할 거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아, 그래……」
즉답을 받고 조금 낙담한다. 라이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일 것이다.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그저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같은 말을 반복한 라이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너와 함께라면, 뭐가 되든」
「……어?」
「가자」
혼잣말을 지워내듯 말한 라이가 걷기 시작한다.
어안이 벙벙해져 코노에는 바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꼬리가 떨릴 만큼 환희가 북받쳐 오른다.
「빨리 와라. 두고 간다」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다.
「지금 갈게!」
코노에는 꼬리를 세우고 서둘러 라이의 뒤를 쫓는다.
입가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미소를 머금고.
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
라이가 그렇게 생각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물론 자신도 같은 마음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거리.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관계.
그것은,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래로 돌아간 거울의 잔해. 이제는 풀 사이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양의 달이 지평선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며 하늘에 모호한 색채가 탄생한다. 낮과 밤의 경계를 떠도는 바람이 불어와 반짝이는 모래를 저편으로 실어보냈다.
End